가을
3초 앞을 모르는 삶
안광석
2021. 11. 11. 03:47
어제 산책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송아지만큼 커다란 사슴이 내 차를 들이받았습니다. 길가 숲에서 갑자기 내 눈앞으로 튀어나오는 바람에 브레이크를 밟을 시간도 없이 풀 스피드로 충돌했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슬로비디오로 사슴이 대여섯 번을 구르고는 길가에 쓰러집니다. 사슴은 요새가 발정기라서 여기저기서 무시로 정신없이 툭툭 튀어나오는데, 특히 해가 막 지고 어둑어둑해질 때는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그것을 잘 아는데도 하필 그 시간에 무심코 달리다가 사고가 났습니다.
동물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와서는 심하게 다친 사슴을 보고 판단하여 총으로 안락사를 시킵니다. 내 차는 얼굴이 휴짓조각처럼 찢어지고 찌그러졌습니다. 당신이 새 차라고 좋아했던 차인데 고쳐서 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3초만 빨리 갔던지 3초만 늦게 갔으면 사고가 없었을 텐데. 그랬다면 사슴도 무사하고 내 차도 괜찮을 텐데. 사는 게 그런 건가 봅니다. 3초 앞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