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후반전에서
사람은 누구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기가 있습니다. 나에게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엄마와의 갑작스러운 이별, 첫사랑, 집 떠나 서울로 유학, 첫 직장, 결혼, 미국 유학, 어진이 출생, 박사 학업 실패와 취직, 예람이 출생, 학업을 마치고 다시 학교로 취직, 당신의 진단과 투병, 그리고 당신과의 이별, 이런 것들이 생각납니다. 그 각각의 변곡점에서 때로는 힘들었고 때로는 설레었으며 때로는 환희에 소리쳤습니다. 오늘 아침에, 그 시간을 돌아보면서 내가 오롯이 살아가야 할 인생의 후반전을 생각해 봅니다.
사실 많은 내 인생에는 꽤 많은 전환점이 있었기 때문에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양분하는 것은 말이 안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까지의 나의 삶과 당신을 보낸 후의 삶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신의 곁에서 당신과 24시간 함께 했던 10개월 반 당신의 투병 기간은 내 인생의 intermission이었습니다. 그전까지 내 사고 속 세계의 중심은 나 자신이었으며, 내 힘으로 모든 것을 감당하고 살아간다고 믿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많은 것들을 감사함을 모르고 당연히 받고 살았습니다. 행복하기 위한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가 참 행복하다고 느끼고 그것을 잘 향유하며 살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당신을 보내고 광야를 지나며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세상의 중심은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많은 것들은 누군가의 사랑과 희생과 피땀 눈물로 이루어진 것이란 것을 압니다. 그래서 감사할 일이 너무도 많으며, 많은 것들을 잃었지만 내가 참 행복하다고 느낄 때가 점점 많아집니다. 그래서 더욱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내 인생의 후반전에서 나에겐 두 가지의 꿈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동안의 내 삶의 자취를 정리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필요 없는 것들을 다 버리고 내가 떠난 후의 내 자리가 그냥 깔끔했으면 좋겠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내가 걸어갈 남은, 이 길에 누군가에게는 그분의 흔적이 남기를, 나의 뒷모습 속에서 단 한 사람에게라도 그분이 보이길 그 이름 남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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