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초 소생
2024. 10. 30. 06:50ㆍ살아가는 이야기
불초 소생이란 말이 있습니다. 요새는 잘 안 쓰지만 예전에 아버지한테 아들이 편지를 쓸 때는 아버님 전상서로 시작해서 불초 소생으로 끝났다고 합니다. 그때는 고향 떠난 아들이 집에 계신 부모님께 편지를 보낼 때 편지봉투에 부모님 이름도 함부로 쓰지 못하고 그냥 자기 이름에다가 본가입납 그렇게 적어 보낼 때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불초(不肖)에서 초는 닮을 초(肖) 자를 쓰니까, 불초는 아버지를 닮지 않았다는 뜻으로, 못나고 어리석은 사람을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또한 소생(所生)이란 낳은 바인 나를 낮추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불초 소생이란 말은 통상 부모님께 자신을 낮춰 부르는 것입니다.
이제는 잘 쓰지 않는 생소한 그 말이 나에겐 점점 더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를 존경하는 마음이 커지고 그 아버지를 발끝만큼도 닮지 못하고 그 자취를 털끝만큼도 따라가지도 못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롯이 혼자서 모든 짐을 지고 나의 하늘이 되어주셨던 아버지. 살아 계실 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한마디도 못 한 것이 참 미안하고 아쉽고 죄송합니다. 나도 이제 아버지처럼 아버지가 되었는데 아버지 같은 아버지가 되질 못해서 참 안쓰럽습니다. 찐 불초 소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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