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아내

2023. 4. 8. 00:283년차

날씨가 갑자기 따뜻해졌습니다. 일 년의 반이 겨울 같은 위스콘신에도 봄은 돌아옵니다. 올해는 여느 해보다 조금 이르다 싶게 봄이 오는 것 같습니다. 반소매 옷이 필요할 것 같아서 미루어 놓았던 다림질을 했습니다. 겨우 셔츠 여덟 개를 다렸을 뿐인데 온몸이 뻐그덩합니다. 몇 번 해보지는 않았지만, 다림질은 할 때마다 엄청 힘이 듭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당신을 생각합니다.

 

 

내 일상에서 해야 할 일의 80~90퍼센트는 당신이 해준 것 같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군소리 잔소리 한번 없이 늘 해 준 사람. 당신은 참 나쁜 아내입니다. 힘들다 어렵다 했으면 나도 정신 차리고 같이 했을 텐데 함께 도우면서 살았을 텐데 그러면서 어떻게 하는 것인지 배웠을 텐데. 모든 것을 다 해 주고 훌쩍 떠나버린 사람 그래서 혼자 사는 게 더욱 힘든 나에게 당신은 참 나쁜 사람입니다.

 

 

오늘 다림질을 하면서 깨달았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살아갈 힘을 얻으라고 그런 거구나. 전에는 보이지 않던 집 안 구석구석의 먼지를 보면서 깨닫습니다. 아 이렇게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알아가면서 살아갈 동력을 찾아보라는 거구나. 그런 깊은 뜻이 있었구나. 그래서 나쁜 아내 당신에게 미안합니다.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해주지 못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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