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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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한 걸음씩
당신이 떠난 지 어느덧 한 달이 넘었습니다. 아직도 실감이 안 나지만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추슬러야 합니다. 나 혼자인 삶을 직시하고 그렇게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런 현실이 조금씩 피부로 느껴집니다. 혼자되고 나니 나 자신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당신 없는 나는 앙꼬 없는 찐빵이요 오아시스 없는 사막 휴게소 없는 고속도로이며 목 짧은 기린 이 빠진 호랑이입니다. 당신 앞에서 잘난 체하고 큰소리치고 살았지만, 나 자신은 그저 다 빈 껍데기뿐이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말라빠진 껍데기인 나를 이제는 당신으로 채우겠습니다. 당신의 정신과 마음으로. 눈물과 회한을 거두고 새로운 활력을 가지고 살아가겠습니다. 당신과 약속한 대로 씩씩하게요. 그런데 그게 말같이 마음같이 잘되지 않습니다. 생..
2021.01.14 -
최수종 씨처럼
최수종 씨와 나는 1962년생입니다. 그런데 서로의 공통점은 딱 그것 한가지입니다. 그러니까 그 외의 모든 것이 다르다는 얘기입니다. 최수종 씨는 대한민국 최고 사랑꾼 남편입니다. 반면 나는 참으로 무심한 남편이었습니다. 그가 텔레비전에서 나와서 아내 하희라 씨와의 에피소드를 말할 때면 참 대단한 사람이다 싶기도 하고 하지만 나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렇게는 절대 못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은 보통 남자들의 공적이다 그랬습니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출연자들에게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의 배우자랑 또 결혼하겠습니까 하는 질문을 합니다. 그 질문을 나 자신에게 했었습니다. 그때 내 마음속의 답은 ‘아니요’ 였습니다. 내가 여러 가지로 무능하고 무심한 사람이라서 원운경 씨가 원하는 것들을 충분히 해 ..
2021.01.09 -
없을 때 더 잘해!
너무 정신없이 사는 것 같아서 오늘 아침엔 정신 붙잡고 혈압과 혈당을 체크했습니다. 기록을 보니 석 달 만에 처음으로 하는 겁니다. 혈압도 혈당도 전보다 높아졌습니다. 약을 계속 먹고 있고 몸무게도 많이 줄었으니 수치가 내려가는 게 맞는데 아마도 스트레스가 원인이지 싶습니다. 시력도 떨어진 것 같고 이빨도 안 좋습니다. 당신은 내 건강이 안 좋다고 늘 걱정하고 챙겨 줬습니다. 32년간. 그런데 작년에 갑자기 당신이 더 아프게 되어서 지난 일 년간 내가 당신을 위해 병간호를 하였습니다. 잘은 못 했지만요, 그래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줘서 너무 고맙습니다. 이제는 정신 차리고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나 자신의 건강에 대해서 다시 신경 써야겠습니다. 1년 넘게 못 했던 눈 검사와 새 안경도 하고 치..
2021.01.08 -
씩씩하게 살기
하루에도 열두 번씩 내 마음에는 아픔 슬픔 그리움이 찾아옵니다. 2020년 1월 말 당신이 GBM이란 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고 지난 일 년 동안 나는 마음의 준비를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많이 미안하고 많이 울고 또 많이 헤맸습니다. 그런데 막상 당신이 내 곁을 떠나고 나니 나는 마음의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깊은 눈물샘은 마르지 않고 가슴에는 심장보다 더 큰 구멍이 있습니다. 당신을 본받아 씩씩하게 살겠다고 당신과 약속했지만 타고난 찌질이라서 그런지 그게 생각처럼 되질 않고 여전히 헤맵니다. 떠난 베프 대신 처형 처제가 새로이 친구가 되어 줍니다. 목사님과 주위 분들이 저와 아이들의 안부를 묻습니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분들 친구들이 연락하고 위로와 도움을 줍니다...
2021.01.05 -
당신의 기도, 손길, 발걸음
당신이 그렇게 간절하게 무릎 꿇고 눈물 흘리며 오랜 시간 기도한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것은 나를 위해 아이들을 위해 이웃을 위해 이 땅에 기도로 씨앗을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그 씨앗이 싹이 나고 자라서 내가 변하고 아이들이 돌아오고 이웃에게 복이 있기를 기원한 겁니다. 당신이 그렇게 오랜 시간 사람들과 대화하고 교제한 이유를 깨닫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고 돕고 살기를 소원한 겁니다. 당신이 투병 중에 일어서고 앉을 수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집안의 모든 것을 정리 정돈하고 청소한 이유를 생각합니다. 그것은 당신이 없더라도 정신 차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바란 겁니다. 이제는 당신의 기도와 손길과 발걸음은 내 곁에 없습니다. 그래서 너무도 그립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남겨 준 ..
2021.01.02 -
혼자 사는 법
새해 아침입니다. 지난 32년간 내 곁을 지켜준 당신 없이 처음으로 새해를 맞이합니다. 세상은 하나도 변한 게 없는데 세상의 아무것도 같은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당신과 같이했던 모든 일을 이제는 함께 할 수 없어서인지, 어떤 일에도 몸과 마음이 잘 가질 않습니다. 당신이 도와주고 해주었던 모든 일상이 이제는 하나하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외로움을 잘 타는 내 마음을 꽉 채워 주었던 당신이 떠나니, 더 큰 외로움이 자리 잡고 그 자리에 그리움이 따라 들어옵니다. 늘 내가 먼저 갈 거로 생각하고 준비했었는데, 막상 당신이 먼저 떠나고 나니 아주 슬프지만, 한편으로는 참 다행이다 싶습니다. 만약 내가 당신보다 먼저 갔다면 당신의 삶은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을지요. 그래..
2021.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