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걷지

2021. 6. 3. 06:41여름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이상의 날개 마지막 부분입니다. 나도 한 번만 더 날아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내 인생에서 날개를 달고 날아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날기는커녕 열심히 달려 본 적도 별로 없네요. 그러니까 육십 평생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뚜벅뚜벅 걸어왔습니다. 그나마 지난 1년 반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살았습니다. 숨만 쉬고 살았습니다. 

 

 

봄이 와서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두 달 동안 많이 걸었습니다. 왼쪽 S1 신경이 손상되어 1마일 정도 걸으면 왼쪽 다리와 허리가 아픕니다. 뇌가 아프면 다른 장기가 아무리 건강해도 소용이 없고 신경이 잘못되면 근육이 아무리 튼튼해도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계속 걸었습니다. 고장 난 신경도 치료하고 힘쓰지 못하는 근육을 대신할 다른 근육을 단련하기 위해서. 천천히 계속 걷다 보니 이제는 2~3마일 걸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쉬면서 스트레칭을 하면서 5마일 6마일도 걷습니다. 앱으로 기록된 자료를 보니 5월 8일부터 오늘까지 26일 중에서 14일을 밖에 나가서 걸었고 총 25만 보 정도 걸었습니다. 참 많이 걸었네요.

 

 

영국의 산악인 조지 멀로리는 산을 왜 오르느냐는 질문에 “산이 거기 있기에 Because it’s there”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숲과 들을 왜 걷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냥 걷지” 그렇게 대답하겠습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한나절씩 걷다 보면 아픈 신경과 다리가 치료되는 것뿐 아니라 마음과 정신도 따라서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인생이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목적이 뭔지 어떻게 사는지 잘 몰라도 생각이 없어도 그저 그냥 한 걸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게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당신과 또다시 만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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